돈의 가치는 떨어지는데, 돈 빌리는 값은 오른다
저축자를 자산시장으로 밀어낸 저금리, 싼 돈에 먼저 접근한 사람의 이점, 달라진 차입 조건. 과거의 투자 성공을 재현하려면 무엇을 사는지뿐 아니라 끝까지 보유할 자금 조건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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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하면 뒤처진다는 말을 배웠다. 월급을 모으는 동안 집값과 주식은 더 빨리 올랐고, 대출을 끼고 자산을 산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됐다. 그러니 뒤늦게라도 같은 방법을 따라 하려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방법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싸게 빌리고, 오래 버틸 수 있는 돈. 과거의 성공담에서 이 조건을 빼고 무엇을 샀는지만 따라 하면 전혀 다른 투자가 된다. 같은 자산을 사더라도 매달 내야 하는 이자와 만기가 다르면 끝까지 보유할 수 있는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박종훈은 이를 돈의 두 번의 배신으로 설명한다. 처음에는 돈의 가치가 떨어져 저축자를 자산시장으로 밀어냈고, 그 규칙을 배운 사람들이 빚을 내 투자하자 이번에는 돈을 빌리는 가격이 높아졌다는 것. 지난 40년의 투자법을 그대로 이어 가기 어려운 이유는, 그 투자법을 지탱하던 싼 돈의 조건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자는 이자를 잃고, 투자자는 시간을 얻었다
금리가 내려가면 예금한 사람의 이자 수입이 줄어든다. 돈을 빌린 사람은 같은 금액만큼 이자 부담이 가벼워진다. 원금 1억 원에 금리가 10%에서 1%로 내려가는 단순한 경우를 생각해 보면, 한쪽은 연 900만 원의 수입을 잃고 다른 쪽은 연 900만 원의 비용을 덜어낸다. 같은 금리 인하를 두고도 누구는 손해를 보고 누구는 여유가 생기는 셈.
영상은 이 차이를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된 금리 하락과 연결한다. 경기 침체가 오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크게 내렸고, 회복기에 올린 금리는 이전 고점에 미치지 못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제로금리와 양적완화까지 더해졌다. 박종훈이 저축자의 몫이 투자자로 옮겨갔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침체와 함께 낮아진 금리의 장기 흐름. 도표 출처: 미 연준 FRED·NBER. 박종훈의 지식한방, 8:39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낮은 금리는 시간을 벌어준다. 당장 가격이 오르지 않아도 이자를 감당하며 기다릴 수 있고, 시장이 흔들릴 때 추가로 살 여력도 생긴다. 여기에 자산 가격까지 오르면 담보 가치가 높아지고 다시 돈을 빌릴 조건이 좋아진다. 이미 가진 자산과 싼 차입이 서로를 밀어주는 구조다.
반대편에서는 예금 이자가 줄어드는 동안 사려던 자산의 가격이 올라간다. 통장 잔액은 늘었는데 집을 살 가능성은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 돈을 성실하게 모았는지와 그 돈으로 무엇을 살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니까.
영상의 은마아파트 비교가 이 간극을 보여준다. 31평의 2005년 시세 7억 원과 2026년 9월 실거래가 31억 3천만 원을 비교하면 원화로 약 4.5배다. 영상이 적용한 환율로 환산하면 달러로 약 3.4배, 금과의 교환비율로 보면 한 채에 필요한 금이 48kg에서 18kg으로 줄었다.

영상에서 제시한 2005년 시세와 2026년 9월 실거래가 비교. 도표 출처: 국토교통부·한국거래소·LBMA·2005년 언론 보도. 박종훈의 지식한방, 4:01
이 비교에서 볼 것은 각 자산 사이의 교환비율이다. 원화로 크게 오른 집도 같은 기간 금의 상승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원화 평가액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구매력이 얼마나 나아졌는지까지 알 수는 없다. 저축만 하던 사람이 자산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 데에는 이 경험이 쌓여 있다. 투자하지 않겠다는 선택에도 사려던 것을 점점 사기 어려워지는 비용이 붙었던 것이다.
풀린 돈은 모두에게 같은 순서로 도착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금리가 낮아졌다고 모두가 같은 조건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의 채권 매입은 금융시장의 유동성과 금리, 자산 가격을 통해 영향을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이 대출을 받을 조건은 소득·신용·담보에 따라 갈린다. 이미 자산을 가진 사람은 큰돈을 낮은 금리로 빌릴 수 있지만, 담보와 소득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한도도 작고 금리도 높다. 돈이 풀렸다는 같은 뉴스를 보면서도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다른 셈이다.
박종훈은 새 돈이 금융시장과 자산가에게 먼저 도달하고, 자산 가격이 오른 뒤에야 월급·예금 생활자가 변화를 체감하는 순서를 강조한다. 영상에서 칸티용 효과를 꺼내는 이유다.

영상이 설명하는 새 돈의 전달 순서와 자산 분포 변화. 도표 출처: 미 연준 DFA·리샤르 칸티용·『가짜 돈 진짜 부』. 박종훈의 지식한방, 17:11
이 차이는 위기 때 더 커진다. 자산 가격이 싸졌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정작 그때 생계가 흔들리고 기존 대출을 갚아야 하는 사람은 싸진 자산을 살 수 없다. 생활이 안정된 뒤 다시 투자할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미 가격이 반등해 있을 수 있다. 반면 여유 자금과 차입 여력이 남아 있는 사람은 낮아진 가격과 낮아진 금리를 함께 이용한다.
그래서 “위기 때 샀더니 부자가 됐다”는 성공담에는 위기를 견딜 자금이 있었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종목이나 매수 시점만 복사해서는 그 전제를 가져올 수 없다. 지난 시대의 승자를 이해하려면 무엇을 샀는지와 함께 어떤 돈으로 샀고,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었는지를 봐야 한다.
그 방법이 대중화되자, 돈을 빌리는 조건이 달라졌다
저축만으로는 자산 가격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배운 사람들은 투자에 나섰다. 자기 돈이 충분하지 않으면 대출을 더했다. 과거에 그 방법으로 자산을 늘린 사례가 많았으니 그럴 만했다.
문제는 과거의 투자 성과에 당시의 저금리도 함께 들어 있다는 점이다. 싼 이자로 긴 시간을 확보한 사람과, 높은 이자를 내며 빠른 가격 상승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은 같은 전략을 쓰고 있지 않다. 후자는 자산 가격이 오를 방향뿐 아니라 이자 부담을 견딜 수 있는 기간 안에 오를 것까지 맞혀야 한다.
영상은 2024년 9월과 2026년 10월을 비교해 이 변화를 보여준다. 연준 기준금리 상단이 낮아진 동안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오히려 높아졌다는 도표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차입 비용도 다시 싸질 것이라는 기대에 균열이 생기는 대목.

영상이 제시한 기준금리와 장기금리의 엇갈림. 도표 출처: 미 연준 성명·CNBC·미 재무부. 박종훈의 지식한방, 22:05
장기금리는 앞으로의 단기금리 예상과 돈을 오래 묶어 두는 데 대한 보상을 함께 반영한다. 중앙은행이 오늘 정한 금리 하나로 결정되는 가격이 아니다. 연준의 장기금리 설명도 이 두 요소를 구분한다. 자산을 오래 보유하려는 사람이 확인해야 할 것은 실제로 돈을 빌리고 만기를 연장할 때 적용될 금리다.
박종훈은 정부의 재정 부담을 장기금리를 떠받치는 구조적 요인으로 본다. 영상은 미국의 이자 지출이 2024년에 국방비를 넘어섰고, 이후에도 더 늘어날 것이라는 도표를 제시한다. 이미 쌓인 부채에서 이자가 나오고, 재정 적자가 이어지면 그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다시 돈을 빌려야 한다. 민간의 자금 수요가 약해져도 정부의 차입 수요가 크게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연방정부 순이자 지출과 2026년 전망을 제시한 화면. 단위: 억 달러. 도표 출처: 미 의회예산처·미 재무부. 박종훈의 지식한방, 23:49
여기에 영상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연결한다. 저축을 늘리던 세대가 모은 돈을 쓰기 시작하고, 고령층을 위한 연금·의료 지출은 커진다. 박종훈의 전망에서는 이 변화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어렵게 만들고, 정부가 계속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경기 한 번 나빠졌다고 사라질 부담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영상 24:10–25:45
이 설명을 따라가면 “힘들어지면 금리를 내려 주겠지”라는 기대만으로 과거의 투자법을 되풀이할 수 없다. 낮은 금리로 돌아갈 때까지 버티겠다는 계획은, 그때까지 버틸 비용을 먼저 해결해야 성립한다. 과거에는 수익을 키워 주던 대출이 이제는 보유 기간을 제한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
금리는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을 가른다
금리 상승은 자산의 장기 전망을 다시 평가하기도 전에 매달 빠져나갈 돈을 바꾼다. 집값이나 주가가 언젠가 회복될 것이라고 믿어도 다음 달 이자는 다음 달에 내야 한다.
영상은 4억 원을 30년 원리금균등상환으로 빌리는 조건을 비교한다. 연 2.45%일 때 월 약 157만 원, 연 6.89%일 때 약 263만 원. 원금과 상환 기간을 고정하고 금리만 달리 계산하면 매달 약 106만 원의 차이가 난다. 소득이 그대로인 가계에서는 이 돈이 생활비와 저축 여력을 직접 줄인다.

4억 원·30년 원리금균등상환 조건의 금리별 비교. 도표 출처: 한국은행·헤럴드경제. 박종훈의 지식한방, 27:04
그 충격이 언제 도착하는지는 계약에 달려 있다. 낮은 금리를 장기로 고정해 둔 차입자는 그 조건을 유지하는 동안 시간을 확보한다. 변동금리이거나 만기가 짧아 곧 다시 빌려야 하는 차입자는 높아진 금리를 더 빨리 떠안는다. 같은 자산을 보유해도 대출 계약에 따라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달라진다.
영상이 미국의 장기 고정금리 차입과 한국의 짧은 만기·변동금리 노출을 비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안에서도 새로 대출받는 가계와 장기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중소기업은 높은 금리를 빠르게 체감한다고 설명한다. 국가 평균보다 실제로 가진 차입 조건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영상 25:53–27:34, 30:39–30:59
월 상환액 때문에 소비를 줄이면 그 영향은 가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매출이 줄어든 자영업자와 기업도 현금흐름이 빠듯해지고, 이들 역시 비싸진 돈을 빌려야 한다. 자산시장 일부가 상승하고 있다는 뉴스와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체감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이유다.
결국 자산 가격이 회복되기 전에 팔아야 하는 사람과, 그 자산을 사서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갈린다. 첫 번째 배신에서 싼 돈에 먼저 접근한 사람이 유리했다면, 두 번째 배신에서는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해진다. 부의 격차를 만드는 자금 조달 조건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작동하는 셈이다.
오래 보유할 능력까지 투자에 포함해야 한다
돈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문제와 대출 부담이 커지는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자산을 전혀 소유하지 않으면 가격 상승에서 멀어지고, 자산을 사는 데 돈을 전부 쓰면 그 자산을 지킬 여력이 사라질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돈의 역할을 나누는 일이다.
영상은 이를 닻과 돛에 비유한다. 생활비와 만기에 대비하는 돈, 구매력과 통화 위험에 대비하는 자산, 생산성과 성장의 몫을 소유하는 자산을 구분한다. 앞의 두 역할이 배를 붙잡는 닻이라면, 성장 자산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돛이다.

현금·짧은 만기 예금, 금·통화 분산, 생산성 자산의 역할 구분. 화면 출처: 『가짜 돈 진짜 부』. 박종훈의 지식한방, 31:30
생활비와 대출 상환에 쓸 현금은 장기 자산을 급하게 처분하지 않게 해 준다. 구매력을 보완할 자산을 나누어 갖는 일과, 새로운 생산성과 이익의 성장에 참여하는 일도 각각 목적이 있다. 수익률 숫자 하나로 이 역할들을 줄 세우면 당장 수익이 낮은 자금부터 없애게 된다. 그러다 정작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수 없어진다.
이렇게 보면 버틸 여력을 남기는 것은 투자 성과의 일부다. 위기 때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좋은 자산을 알아본 데 더해, 남들이 팔아야 할 때 살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현금흐름과 만기를 빼놓고 장기투자를 말하면 그 조건이 빠진다.
과거에 오른 자산의 이름만 외워서는 과거의 성공을 재현할 수 없다. 그 성공에는 낮은 이자, 긴 보유 기간, 위기 때 남아 있던 자금이 함께 들어 있다. 싼 돈이 돌아와야만 유지되는 투자에서 벗어나, 지금의 비용으로도 오래 보유할 수 있는 자산을 쌓는 것. 돈의 규칙이 달라졌다면 투자법도 여기까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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